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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육사인상-2005임부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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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부택 이병형 이용
임부택 동문 공적
 
1946년 5월, 육군사관학교 창설과 함께 제1기생으로 임교, 그해, 6월15일 육군소위로 임관하여, 20여년을 조국수호에 기여 하였다. 6.25전쟁이 발발하던 1950년 1월 18일에 6사단 창설모체가 된 7연대장에 보임되어, 6개월 후, 춘천 북방에서 6.25전쟁을 맞은 그는 전쟁초기부터 북괴군과 접전하여 적을 제압하는 눈부신 전과를 거두었다.
당시 국군병사들은 전차와 자주포를 구별 할 줄 몰랐다. 그래서 SU76자주포를 전차로 오인 하고, 인민군이 전차를 앞세우고 공격한다는 말을 퍼뜨렸다.
인민군 전차공포증이 사기가 저하된 아군에게 널리 만연되어 있었다. 연대장 임부택 중령은 대전차포중대 2소대장 심일 소위를 중심으로 특공대를 투입 적자주포가 30m 앞까지 다가오기를 기다리다가 57mm 대전차포를 쏘았다. 선두로 달려오던 SU76자주포는 대전차포를 맞고 끼룩끼룩하더니 멈추어 섰다.그 바람에 뒤따라오던 2번 자주포도 멈추었다. 그사이 심소위를 비롯한 특공대는 자주포에 뛰어 올라가 해치를 열고,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져 넣었다. 화염병효과는 의외로 높았다.
화염병 불꽃은 SU76자주포 안에 있던 포탄추진제를 점화시켜 삽시간에 자주포를 폭파 시켰다. 심소위 특공대의 쾌거는 삽시간에 입에서 입으로 적전차를 화염병으로 잡았다는 소문과 함께 전차공포증에 시달리던 국군의 사기를 올리는 데 큰 공을 세웠다. (훗날, 육군은 심일상을 제정하여 위국 헌신한 전투중대장에게 수여하는 제도)
인민군 2사단은 임부택 중령의 강력한 항전으로 6월 27일 전쟁 시작 3일 만에 겨우 춘천을 점령하였다. 이 공격에서 인민군 2사단은 40%의 전투력을 상실하고, SU76 자주포 7문과 대전차포 2문이 파괴되는 피해를 보았다. 이때, 육군본부는 서울을 포기하고, 수원으로 철수 한 후였다.
6월 25일 당일부터 수일간 춘천전투에서 인민군 2사단 주력을 반신불수로 만든 대승에 이어 7월 초순에는 충북 음성 무극과 충주지역 특히 신니면 동락리 전투에서는 적 1개 연대를 섬멸하는 전과를 올려, 전 장병이 1계급씩 특진하는 신화적인 기록을 세웠고, 연대장 임부택 중령도 이때(1950년 7월 11일)대령으로 승진되었다.

곧이어, 낙동강 전선의 신령지구 전투에 투입되어, 최후결전으로 적의 진격을 격퇴 하고, 북진의 발판을 다진 후 반격전으로 전세가 만회되어, 10월 1일 38선을 넘어서 원산, 평양을 거쳐, 10월 26일 오후 2시, 마침내 한만국경도시 초산에 돌입 감격의 눈시울 적시며 압록강 물을 수통에 담아 이승만 대통령에게 바친 것은 6사단 7연대의 자랑이요, 6.25 한국전쟁사에도 길이 남는 대목이다.
10월 1일, 군군의 날이 바로 이를 상징한 것이다.
이렇게 적의 간담을 서늘케 하는 전과가 계속되자 중공군지휘부에서는 인해전술로 수십만의 중공군을 압록강 너머로 투입시키면서 7연대를 격멸하고, 임부택 연대장을 생포하라고 특별지시를 했다. 7연대는 이러한 위급한 상황에서 낭림산, 묘향산 일대에서 겹겹의 포위망을 뚫고 철수작전을 감행 구사일생으로 생환하면서, 7연대는 2000여명의 병력이 3분의 1로 손실 당하는 비운을 당했다. 후일 용문산 전투에서 깨끗하게 설욕했다.
즉, 1951년 4월 하순 5일간의 용문산 전투에서 임부택 대령을 6사단 부사장으로 중공군 3개 사단 규모를 전멸에 가까운(포로만 3,548명) 대승을 거둬, 한국전쟁사상 최대의 전승을 기록했던 것이다.
임부택 장군은 후배들에게 "나는 한번도 적의 기습을 안받았어요. 항상 적이 오는 것을 사전에 대비해서 전과를 올렸지요. 6.25 첫날에도 우리는 기습을 받지 않고, 소양강변에서 적을 격퇴시켰어요. 우리 후배들은 그저 굳게 단결해서 적을 초전에 박살내도록 경계심을 강화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하고 겸손하게 말씀 하신다.
저서, "『압록강아 말해다오.』의 임부택 장군의 실전비록은 충용무쌍한 국군의 참모습을 실감케 하는 전사의 교본" 이라고, 백선염 장군은 칭찬하였으며, 국방장관을 지냈던 유재흥 장군은 "임부택 장군이 없는 6.25전사란 상상조차 하기 어렵다. 불멸의 가치를 지닌 혈전사"라고 극찬 하시였다.
( * 자세한 공적내용은 저서 『압록강아 말해다오.』를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
임부택 장군과 직접 관련 있는 전승비(전적비)가 충주 신니면 동락리, 음성 전투 감우재, 용문산, 동락초등학교의 김재옥 여교사의 헌충탑, 춘천지구 전승비만 보아도 얼마나 훌륭한 용장임을 입증하기도 한다.

훗날, 김일성은 춘천전투에서 진격이 늦어진 것이 전쟁 전체를 망친 원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이로 인해 머리끝까지 화가 난 김일성은 그와 함께 동북항일전에 참전했던 2군단장 김광혐 중장과 산현군 출신인 2사단장 이청송 그리고, 사단장 최춘국 소장을 전격 교체해 버렸다고 한다.


◆ 주요경력
 
  姓 名 임부택 (林富澤)
  生 年 月 日 1919년 11월 16일
  現 住 所
서울시 성북구 종암동 52-10 (10/3)

  1946. 6. 15. 육사 1기 졸업
  1948. 8. 육군본부 작전국 작전과장
  1949. 12. 제6사단 제7연대장
  1951. 11. 제5사단 부사단장 겸 사단장 대리
  1952. 8. 육군 준장 진급, 제11사단장
  1954. 5. 육군 소장 진급, 10월 국방부 제1국장
  1955. 3. 부산대학교 법대 졸
  1955. 10. 진해 육군대학 졸업
  1956. 6. 연합참모본부 제3부장
  1957. 8. 제1군 사령부 참모장
  1959. 6. 미국 지휘 참모대학 졸업
  1959. 7. 제2군 관구 사령관
  1960. 2. 제3군 관구 사령관
  1960. 10. 제1군단장
  1962. 3. 15. 의원 예편
  1973. 2. 한국 비료 공업(주) 상임감사
  1980. 11. 대한 화재해상 보험(주) 거산 대리점 운영
  1984. 10. 한국 자동차 보험(주) 거산 대리점 운영
  1986. 11. 해동 화재해상 보험(주) 고문 취임
  1993. 8. 20. 대한민국 참전 연합회 회장
   2001. 11.
별세, 대전 국립묘지에 안장.

◆ 賞 勳
 
창군후로부터 휴전 조인 무렵까지 전방지휘관으로 참전한 10여 차례 전투 상황을 열거 할 수 있다.
곧, 1948년 5월 제주도 4.3폭동 진압 작전을 비롯하여, 6.25전란 발발 당일부터 3년여에 걸쳐 1950년 6월 춘천 지구 작전, 7월의 음성.충주 지구 작전, 8월의 신령 지구 작전, 9월의 제1차 반격작전, 10월의 초산 작전과 압록강 철수 작전, 11월의 중공군 포위망 탈출 작전, 12월의 평양 철수 작전과 동두천 부근 작전에 이어 51년 4월의 사창리 지구 작전, 5월의 용문산 지구 작전, 그리고 53년 7월의 삼현 지구 작전을 선택해 본다.
태극 무공 훈장 2, 을지 무공 훈장 4, 충무 무공 훈장 4, 그리고 화랑 무공 훈장 2의 영광을 비롯하여 대통령 개인 공로 표창장을 1951년 5월에, 미국 공로 훈장은 1954년 8월에, 희랍국 십자 훈장은 55년 8월에, 방위포상은 56년 10월에, 3등 근무 공로 훈장은 62년 3월에 각각 받을 수 있었다.
여기에서 살아생전에 태극 무공훈장을 두개나 수령한 영광은 전군을 통해서 유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1953. 5. 무성(無星) 태극 무공훈장
  1954. 6. 은성(銀星) 태극 무공훈장
  1950. 12. 무성(無星) 을지 무공훈장
  1952. 5. 은성(銀星) 을지 무공훈장
  1953. 5. 금성(金星) 을지 무공훈장
  1954. 1. 금성(金星) 을지 무공훈장
  1951. 4. 은성(銀星) 충무 무공훈장
  1951. 6. 은성(銀星) 충무 무공훈장
  1952. 10. 무성(無星) 충무 무공훈장
  1953. 5. 금성(金星) 충무 무공훈장
  1950. 1. 무성(無星) 화랑 무공훈장
  1952. 5. 금성(金星) 화랑 무공훈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