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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육사인상-2009양창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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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창식 박세직
주 요 공 적
 
-11사단 중대장, 사단수색중대장 시절-
중대장 특히 독립수색중대장은 전쟁의 꽃이며 용맹한 군인 상 그것이었다.
※ 중위, 대위 시절 제11사단 수색중대장으로서 사단의 귀와 눈이 되어 최전방에서 수색전을 전개, 격일제로 하루 평균 40KM - 50KM를 왕복 적지에서 활동하였으며, 왕성한 책임감과 공격정신으로, 건봉산 탈취전 884고지 공격전, 월비산과 351고지, 그리고 187고지 일대에서의 방어전에도 참여하여, 당시 전우 신문에 대대적으로 보도되기도 했으며 화랑무공훈장을 3회에 걸쳐 수상하였음
   
  -2군 사령부 작전처 근무 시-
  ※ 10개 예비 사단의 동원태세 확립
※ 10개 예비 사단 중 3개 사단을 전투사단화 하는 작업 실시
※ ROTC 학생들에 대한 군사훈련 실시(시설 및 교육 준비)
   
  -2사단 작전참모 시절-
  ① 전 전선에 걸쳐서 실시된 영구진지공사와
② 캔사스 라인에 대한 진지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③ 전군사격대회에서 2사단이 계속 1등
   
  -3군단 정보 참모-
  ① DMZ 내의 군사분계선 일대의 무성한 숲의 제초작업을 휴전 후 처음 실시
② 남방한계선의 일부와 간첩 침투용의 지점에 목책선을 설치하여 (후일 영구 철책선 시설의 선례를 만듬) 간첩 침투를 예방
   
  -72연대장-
  ① 예비진지(제2선 진지) 영구진지공사
② 남방한계선에 철책선 설치
③ 특히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기습실패 후 북상 도주로 차단작전에 참여
   
  -백마 제30연대장-
  ※ 백마 제9호 작전의 성공적 완수(주공연대로서의 작전) (주공연대로서, 나타랑 월남 제2의 도시를 위협하는 그랜드쏜멘 산의 월맹 정규 제 17B 연대를 완전히 소탕 격멸함으로써 한국군의 용맹을 세계에 알리는 백마 최대의 전투)
   
  -서울대학교 학생군사교육 단장-
  ※ 70년대, 71년대의 학생 데모와 군사교육반대, 학원내 군인상주반대투쟁에 의연하게 맞서, 충돌 없이 임무수행, 문교부장관의 감사장 받음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작전기획처장-
  ※ 개선문계획을 수립 실시(방대한 계획이었음) (주월 한국군 철수 및 국내수송계획과 수용계획, 수용시설의 준비점검 등) ① 사이공에 출장하여 주월 한국군 사령관에게 부리됨 ② 철수병력(군속포함) 총 35413명을 11개 대대로 편성, 73.2.5일부터 73.3.15일까지 철수 완료 ③ 3월14일 15:30분에 대통령 임석 하에 수원비행장에서 환영행사(행사참가병력 25,000명) 모든 계획은 차질 없이 집행됨
   
  -제3군 창설을 위한 준비-
  ※ 제3군 창설
① 3군 사령부 위치 선정과 Boundary 및 후방 지경선 결정
② 6관구 사령부와 관계 설정
③ 3군 사령부의 부대표 작성
④ 2군과의 관계 설정
⑤ 3군 사령부 편성표 작성 등
   
  ※ 수도기계화사단 창설과 2개전차여단을 3개 기계화여단으로 개편, 군전력 증강
① 베트남에서 철수하여 해체된 맹호사단 병력을 활용하고
② 군원으로 기 확보 치장하고 있는 200여대의 전차를 전력화하고
③ 장차전에 대비하여 기계화사단의 창설과 독립작전수행능력이 없는 2개 전차 여단을 기계화보병 여단화하여 군의 기동력 있는 전력을 보유케 하는 것은 시대적 요청이었다. 주변의 무지와 싸우며 이를 성사시키는 데에는 남다른 노력과 결의가 필요했다.
   
  -합동참모본부 J-3차장(주로 대간첩작전 수행)-
  ① 대간첩작전을 위한(해안선 경계는 대부분 경찰이 담당하고 있었다) 경계 실태 점검을 위하여, 전국 해안선 순회 점검과 주요도서를 방문, 도서 경계 상태 확인은 참으로 힘들었다.
② 서해 5개 도서의 영구진지공사의 총지휘와 작전계획의 검토, 도상 연습, 훈련상태 점검 실시 (해병대 진지공사를 왜 육군이 하는가라고 의아할지 모르지만 합참의 임무로 가능하며 나는 국방장관 특명으로 3개월간 백령도에 주재하면서, 해병대 여단장 고장근과 침식을 함께 하며 이를 완수하였다)
   
  -결론-
  군생활 30여년에 오직 성실과 헌신과 충성을 다하여 임무를 수행하고 책임을 다했는데 총장과 개인적인 불화로, 그것도 VC의 계략으로 빚어진 일로 인한 불화였음에도 그 분이 갖는 절대적 권한의 정당치 못한 집행으로 군 문을 떠나게 되는 심정은, 헤아릴 수 없이 착잡하였다. 그러나 군 재직기간에 이룩한 혁혁한 업적, 특히 전쟁기간 중 어려웠던 수색중대장의 임무를 성공리에 마칠 수 있었고 동부산악지대에 스스로 골재를 지고 나르며 영구 진지 공사를 성공리에 마무리 한 것, 72연대장 시절, 혹한기에 청와대 기습사건과 도주, 북상하는 적 특수부대 요원을 섬멸하는 작전에 병사들과 함께 고생했던 일, 백마 9호 작전의 주공연대장으로서 성공적인 작전으로 한국군의 위용을 세계에 떨친 일,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기획처장으로서 어려운 시기에 제3군창설에 고생한 일, 수도기계화 보병사단 창설과 3개 기계화 보병여단창설에 얽힌 이야기들은 반드시 기록으로 남길 것이며 이러한 업적은 백미(白眉)적 공적이라고 자인하는 바임.(2차대전의 세계 전차전지 모드 섭렵)

합참에서 대간첩 작전 상태 점검을 위하여 전 해안선과 도서를 장군이 순회한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으며, 이러한 모든 것은, 왕성한 책임감과 강인한 정신력과 실천의지의 발로와 불타는 애군심과 애국심에 바탕한 것이라고 자부하고 있음. 군복을 벗고 1년 동안 이리직업전문학교를 건설하고 창설하였으며 바로 정치 생활로 들어가게 되었음.
   
  -정치 생활-
  ※정치생활을 시작할 때, 나는 다음과 같은 목표를 세워 결행함
1. 농촌 서민들의 진정한 친구가 되어 그분들의 솔직한 대변자가 되자 (농민들의 힘이 되어주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자) (남원 시민들은 현재 양의원만큼 서민을 위해 실질적 대변을 하고 일한 사람 없다고 이구동성으로 찬양)

2. 산악지대에 천수답이 많아 물이 없어 농사를 못 짓고 과수원도 경영 못하는 농촌에 반드시 수리안전답을 만든다. ※ 동아댐 건설은 남원 농촌의 수리안전답을 달성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 되었으며 이곳에 광역상수도의 수원지로서의 역할도 하게 되는 의 담수가 가능한 댐임 (담수량 320만콘, 1987.12 착공 ~ 2005.12 완공) 기타 수많은 저수지와 소규모 댐 건설, 그리고 지하수 개발로 남원 전 지역이 수리안전답을 달성한 것은 기념비적 공적임. 농민들은 지금도 양 의원에게 감사하고 있음.

3. 농산물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교통의 편리를 제공하기 위하여, 오지에 도로를 개설하고 또 확장하며, 가능하면 포장을 하여 버스를 진입시키고 원예 농산물(딸기, 포도, 복숭아, 기타 농산물) 등을 부서짐이 없이 원형을 유지하게 하며 적기에 시장에 냄으로써 농촌 소득을 증대시키자(현재 남원 오지에 도로 안 낸 곳 없고 버스가 다니지 않는 곳 없음)

4. 종합병원시설을 유치하여 남원을 중심으로 지리산 주변의 주민들에게 큰 도시로 나가는 번거로움을 없애주었다 (과거에 도립의료원에 국고를 지원한 일은 없었으나 양의원의 노력으로 국고지원(처음 있는 일)을 받아 번듯한 종합병원 건립, 인근 농촌 주민에 공헌)

5. 인구 유출을 막고 가난한 농민도 아들, 딸 들을 대학에 보낼 수 있게 대학을 유치하고, 대학 진학을 못 하는 중졸자, 고졸자들이 기술을 익힐 수 있는 직업전문학교를 유치하여 기술입국에 기여하고 취업의 기회를 제공하여 주자 (서남대학 유치, 남원직업전문교 유치함. 100%시행)

6. 원래 남원은 춘향소설과 국악인 판소리 동편제의 발상지이므로 이 곳에 국립국악원을 세우고, 광한루후원을 확장하고 시설을 보강하자 (국립국악원을 건립하였고 약 45억원을 들여 광한루를 확장 정비함/100% 시행)

7. 전주 남원간의 국도를 4차선화 함으로써 88고속도로와 연결하여, 교통의 편리를 기하자(100% 완성함)

8. 마을마다 회관을 건립하여, 농민들의 휴식공간과 대화의 장을 마련하여 주었음 (6.25 전쟁 이전에는 사랑방이 마을마다 운영되고 마을에서 잘 사는 집의 사랑방을 이용)있어, 마을 어른들의 휴식공간이 있었으나 6.25 이후 사랑방이 사라져 마을에는 회관이 필요했다/200여개 마을에 모두 지어주자고 결심 = 100% 달성)

9. 광역상수도 시설을 하여 비위생적인 우물물과 간이 상수도를 없애 농촌의 위생상태를 향상시키고 농촌생활의 질을 높여주자. (남원, 임실, 순창 및 곡성군의 일부를포함 1,000억 이상의 예산이 소요되는 광역상수도 사업, 농촌에 처음으로 착공)

10. 농경지 정리를 대폭 실시하여 농촌의 기계화를 촉진하고 농업정책의 일관성 유지와 농촌의 부채 탕감을 단계적으로 하며 농촌 현대화에 많은 정부 투자를 유치하도록 노력한다.(이도 농촌개발 5개년 계획, 42조의 예산 투입으로 완성함) "본인이 농림수산위원장으로서, 농촌현대화를 위하여 밝힌 소신을 별첨함"

11. 교통체신위원장 시절 전신전화사업에 공헌
전신전화사업의 현대화로 산간 구석구석까지 전화를 놓아 1천만대 시대를 돌파하는데 커다란 기여를 했는가 하면, 부산항만 ? 제주항 ? 군산항만 시설의 근대화를 도모했고, 만성적자로 허덕이던 철도의 경영합리화에 기여하였다. 또 전국의 골프장의 적AN-2비행기의 강습착륙에 대비한 시설의 보강에도 관심을 쏟아 대침투전에 공헌함.

12. 전라북도 도당 당사 건축 과거
공화당 시절, 국회부회장 등을 배출한 전북은 당사 하나 마련 못하고 셋방살이만 하고 있었다. 본인이 도당 위원장으로 취임하자,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이를 마련하고자 결심하였다. 그 때, 동료 의원도 실패할 것이므로 그만 두는 게 좋다는 권고와 주변에서도 어렵다고 했으나 나는 굳게 결심하고 지상 5층, 지하 1층의 현대식 건물을 건축하여 현재 사용하고 있음 (솔직하게-이런 사업은 감히 다른 분들은 엄두를 못 냈던 것임. 중앙지원은 전무함)

13. 한국과 베트남 간의 국교 수교 역할 수행
한 베트남 집권단과 교류를 트기 위하여, 본인이 사절단장이 되어, 서정화의원과 조진영의원에 1명과 중앙위원 2명 등 6명으로 구성된 사절단을 인솔, 베트남 하노이에 도착, 우리나라 집권당과 교류할 것을 제의, 베트남 공산당 외무부장을 창구로 하여 교섭을 전개, 기간 중 베트남의 주은 각료와 국가발전위원장, 그리고 호치민<사이공 시>시장 등과 만났으며 국회의장과도 접견, 대화하는 등 베트남 요로와의 교류를 텄으며 특히, 국회의장의 호의 등으로 한 베트남과의 교류를 하기로 하고, 이 날 한국 박노영 대사를 비롯한 대사관 직원들 입회하에 베트남 공산당 외교부장이 정식으로 교류 합의를 선언하였다.
(그간 정식외교 채널에서도 이루지 못했던 일이었다. 특히 베트남 서기장을 초청하는 김영삼 총재의 서한에 대해서 원칙적으로 동의하면서, 다만 북한을 다녀 온지 2개월도 채 안되는 시점에서, 외부에 누설되지 않기를 공식으로 요청함으로 당시 지상보도는 일체 차단했던 것이다. 그 뒤 사전답사 목적으로 베트남 공산당 외교부장이 다녀가고 이어서 베트남 서기장이 한국을 방문함으로써 정식으로 국교가 이뤄졌음. 한-베트남 수교의 가교 역할을 함)

14. 육사 10기 동기회장으로써 한 일(현재11년 간) (97.7.10일 제10기 동회장으로 취임 현재까지 11년간 임무수행 중) ① 6.25 당시 실종된 동기생의 명단 정리와 전사 확인 작업으로 명예를 회복시켜주고(사실 벌써 했어야 할 일들임) ② 군번을 2중으로 받은 동기생과 군번을 못 받은 동기생(행불 또는 전사자 중)들의 군번을 정확히 찾는 노력을 통해 이를 정리 하였으며 ③ 6.25 육사생도 전적비가 건립 된지 20여년이 지나게 되자, 보수할 곳도 생기므로 98년에 국비 1억을 지원받아 경내, 포장과 계단의 재시공 등과 환경정리를 하였고, 전적비 건립 당시 30여년 간 차용한 토지를 매수하고, 생도2기와 각 기별 참배를 합동으로 하도록 하였으며 2003년부터는 육 사에서 추도식을 주관하도록 육사와 교섭 성취시켜 현재에 이르렀음 ④ 뿐만 아니라 동기생의 단결과, 친목을 도모하기 위하여, 매년 1회 내지 2회 가족 동반하여 국내 각 지역과 전적비 등을 1박2일 코스로 여행하였으며, 일본 대미도도 일행이 다녀왔음. 07년도에는 11월 전방 715OP를 방문하였음 (방문한 곳-①울진 원자력 발전소와 주변에 있는 덕수온천 등 ②동해안 전망대와 화진포등 ③범성포 원자력 발전소와 선운사 ④해남 일출봉과 대둔산 ⑤유달산과 보해양조장 시설 ⑥동해 설악산 내설악과 화진포 ⑦남해 거제도 포로수용소와 외도 ⑧여수 오동도와 호남 제철소 ⑨남원 춘향제전행사와 지리산 일대 ⑩백담사와 동해 DMZ 내의 OP 등 ⑤양장군은 군 재직 시는 물론 군문을 떠난 뒤에는 지피지기는 100전 100승이라는 명언을 손수 실천하였다. 그는 투철한 안보관과 확고한 국가관이 소유자로써, 국민계몽에 솔선하였다. 그는 군 장성(채명신 장군)을 지방에 초대, 당원에게 정신교육을 의뢰 실시하였고, 박세직 장군을 초대, 올림픽에 관한 얘기 등을 들려줬으며

15. 헌정회 내에 안보특별위원회 구성 - 대한민국 헌정회 내에, 안보특별위원회를 설치하여 군 출신 또는 국가안보에 관심이 있는 인사들 60여명으로 위원회를 구성하여 99년부터 안보계몽 및 회원 교육을 매월 실시하였으며 2003년까지 매년 춘추로 대대적인 안보 세미나를 전쟁기념관 또는 재향군인회 회관 등에서 실시하였음. 매회 4-500명의 참가 인원에게 한국의 안보위기를 알리고 안보의식을 높이는데 기여하였음. 뿐만 아니라 안보 이슈가 일어나도 무신경한 성우회 등에 자극을 주어 성우회가 안보에 관심을 기울이도록 하였음(당시 성우회장- 장지량 장군/이용 장군 -사무총장) 뿐만 아니라 헌정지 칼럼니스트로 97년 8월부터 2000년 11월까지 3년 5개월 동안 활동하면서, 세미나에 발표자로 참여하거나 사회를 맡아 함으로써 능력 있는 예비역, 후배장군들에게,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긍심을 심어주게 되고 능력 있는 많은 육사출신들이 안보관계에 관계하게 되어 군장교단의 평가를 받게 되었음

16. 자유대한수호국민운동(안보포럼)창설

양장군은 헌정회의 안보위원장을 후배 박준병 장군에게 넘기고 2004년 3월에 전쟁기념관에서 자유대한수호국민운동이라는 안보포럼을 창립하고, 이 날 참석하신 600여명의 군, 정계, 정부요로를 거치신 인사들과 안보의식을 안양하고 그 후 현재까지 38회에 걸쳐 4,500여명에게 안보의식함양에 노력하여왔음. 또한 안보단체에 맨 먼저 10기생이 후원 및 동조세력으로 가입하고, 동기생 회비에서 약소하나마 후원금도 찬조하였으며, 타 기에도 권유하여 이에 동참하도록(특히3기생과 8기생)하는 등 그의 활동은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였음. 실로 양창식 장군은 군 재직 시는 물론 군복을 벗고 사회에 진출하여 더욱 그 능력을 발휘하였으며, 특히 정치인으로서 청렴, 성실하게 지역 발전과 농촌의 근대화를 위한 사회기반시설과 간접자본 획득을 위한 시설 등에 획기적 기여를 하였으며, 계획하고 목표로 세웠던 모든 것을 100% 이상 달성하여 지역구 관리 모범생으로 이름을 날려, 14대 국회에서 오직 호남 당시 여권에서 2명 당선되었는데, 그 중 양 장군이 단연 우수한 득표로 당선되는 영광을 얻었다.

17. 남원군을 시로 승격시키고, 관광단지를 조성하였다

남원군은 당시 인구 186,000명이었으며 남원읍 인구는 6만을 초과하였음. 남원 군민은 남원읍의 시 승격을 갈망하였으며, 시 승격은 인구 6만 이상이어야 한다는 조건이었음. 당시 군세가 남원보다 약간 우위에 있는 정읍읍을 시로 승격시키기로 내부 결정을 한 내무부는 1개도에서 도시에 2개읍을 시로 승격이 어렵다고 하여, 남원은 뒤로 미루게 된 것을 양의원은 대통령께 직소하여 목적을 달성함. 남원도시로 승격되었으며, 남원시내에 관광단지를 조성하여, 산간내륙이지만 지리산을 위시한 주변의 수려한 산세와 운봉일대 구릉지대의 철쭉제, 남원산성(교룡산) 황산대립비(이성계 왜장 아지발도 등을 격퇴한 격전지)등 수많은 문화재를 널리 알리고자 이곳에 관광단지를 유치, 조성하였음.

18. 한미연합사 해체 반대, 작전통제권 환수 반대 1000만인 서명 운동에 "공동의 장"으로 적극참여 중이고, 국가 정체성 회복 국민협의회 발기인에 참여하여 현재 중앙위원, 그리고 5개분과의 한 파트를 맡아 일하고 있음
   
 
이 력 서
성 명 : 양창식(梁昶植, Yang-Chang Sic)
군 번 : 16784
임관일 : 51년 7월 10일
전 역 : 1979년 12월 31일
주민등록번호 : 300315-1******
생년월일 : 30년 3월 15일생
주 소 :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1동 양지마을 금호A 115동 1003호
전 화 : 031)713-4572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
 
학 력  
38-43 주생초등학교 졸
43-48.9 남원농업중학교 6년 졸 (중3년 때 일제로부터 해방)
49.7-50.7 육군사관학교 생도1기
52.9-52.12 육군보병학교 45기초군반 학생
53.2-53.10 육군본부부 도미 4차 학생
55.4-55.8 육군보병학교 고군반 학생
61.4-64.2 강원대학교 정경학과 졸(정경학 학사/야간부)
62.9-63.7 육대 정규과정 졸
74.1-74.7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발전정책과정(ACADA) 수료
73.9-74.7 국방대학원 안보 과정 졸업
76.2-78.2 동국대학교 행정대학원 졸(행정학 석사)
95년 후기 고려대학교 생명환경과학대학원 수료
99.2-99.8 경남대학교 북한대학원 수료
   
경 력  
50.6.25 육사생도 신분으로 포천전투, 태능전투,한강,
금곡리전투 참가(금곡리 전투시 총상)
50.7 제15육군 병원 입원
50.11 보충대대부 대기
50.11-51.6 제11사단 사령부 전공대대 중대장
51.6-52.2 제11사단 수색중대 중대장
52.2-52.9 제11사 9연대 3중대 중대장
53.1-53.2 제1보충 대대 도미대기차
53.10-54.6 제1 훈련소 교수부 화기학과 선임과장
54.6-54.10 육군본부작전극 교육과 기획장교
54.10-55.4 군수국 운영과 근무계장
55.8-56.7 육군본부인사 국 보임과 고시반장
56.7-57.7 제2군 제30사단 인사참모
57.7-58.8 제3군단 사령부 비서실장
58.8-59.5 제7사단 3연대 1대대장
59.5-59.7 제3군단 작전처 작전과장(비서실장)
59.7-59.11 제5군단 작전처 작전과장(비서실장)
59.11-60.4 제5군단 하사관 학교 교육대장(부교장. 교장은 군단장)
60.4-61.4 전교사 전투 발전부 연구발전부장
61.4-62.9 2군 사령부 작전처 예비군작전과장(병비)
63.7-64.6 제2사단 G-3
64.6-65.10 제3군단 정모 참모
65.10-66.11 제35사단 참모장
66.11-67.11 제1군 사령부 비서실장
67.11-68.10 제25사단 72연대장
68.10-69.11 주월 백마사단 제30전투단장
※69.10 (린승사 승려 살해사건, VC 모략)
69.12-71.11 서울대학교 학생군사 훈련단장(서울대 전임강사)
71.11-73.9 육군본부 작전참모부 작전기획처장
74.7-79.1 합동참모본부 J-3 차장(주로 대간첩작전 차장으로 근무)
※75 서해 5개 도시 진지 공사, 보강 및 영구 진지 구축 총지휘
(3개월간 백련도 주재)
79.1 육군준장으로 예편
79.2-80.11 이리직업전문학교 창설 및 초대 교장
80.11 민정당 전북 제5지구(임실,순창,남원)당 위원장
81.3-85.4 제11대 국회의원, 내부위원회 위원
87.6 국회 내부위원회 간사
81.8 민정당 윤리위원회 부위원장
82.12 민족사관 정립 특별위원회 위원
83.3 민정당 전북도지부 위원장 겸 중앙집행위원
83.4-84.10 도지부청사 준공(현재시가 60억 건물, 찬조 받아서 건축, 위원장의 공로)
83.8-84.12 국회 예결위원회 위원
83.10 APPU 한국대표
85.4 제12대 국회의원(임실,순창,남원)
85.4 도지부 위원장
85 춘향문화 제전위원회 명예회장
85.5-88.4 국회 교통체신위원회 위원장
86.4-88.4 국회 모사분과 위원
87.6 민정당 정채위 부위원장
87.8 민정당 국책조정위원
88 민정당 의료보험대책 특별위원장
89 역대 국회의원선거 결과 있을 수 없는 호남지역 37개 선거구에서 민정당 전멸
89.4 한일 협력위원회 상임위원
90.12-96.1 국회 농어촌의정회 회원
92.3-95.12 제14대 국회의원(민자당으로 개칭) (호남에 오직 2분당선, 그 중의 하나)
92 민자당 남원시.군 당 위원장
92.4-95.12 민정당 전북 도지부 위원장
92.6-93.3 민정당 당무위원
92.6 한국 베트남 교류를 위한 사절단 단장으로 베트남 방문 (단장 외에 서정화, 조진형의원 등 5명으로 구성 베트남 서기장 초청 서한 휴대)
92.7 국회 내무위원
92.8 국회 예결위원
92.12-93.2 대통령직 언수위 위원(제5분과 위원장)
93.7 국 워싱턴주, 한국 6.25 참전 기념비 제막식에 한국 국회 대표로 참석"축사"함
93-95 새한 전통예술보존회 회장
93 국회 신협 위원회 부회장
93 한일의원연맹 경제과학 심의위원장
94 국회 아동인구개발의원연맹 이사
94.6-96 국회 농림수산위원회 위원장
95 한일의원연맹 부위원장
95.12 민자당이 신한국당으로 당명 변경 정치 은퇴 선언
97 대한민국 헌정회 이사
육군사관학교 총동창회 부회장
육사 제10기 회장(2007년 현재까지 임무수행)
성우회 정책자문위원(현)
97-2000 제12대 국회의원 동우회 회장
98 21세기 군사연구소 고문(현)
2000 헌정회 이사 겸 안보특위원장(헌정회에 안보특위 구성)
01-03.3 헌정회 부회장 겸 안보특위 위원장
01.12-03 베트남 참전전우회 부회장(회장 채명신)
03.3 헌정회 고문(현)
04.3 자유대한수호국민운동포럼 창설, 공동대표
04 춘향제전위원회 위원장(제74회)
05 재향군인회 자문위원
05.3 자유대한수호국민운동 상임대표(현)
07 재향군인회 원로자문위원(현)
   
승 진  
50.7.10 육군소위
51.2.1 육군중위
52.3.1 육군대위
54.7.1 육군소령(임)
56.3.1 육군소령(정)
59.9.1 육군중령
65.10.1 육군대령
71.1.1 육군준장
   
 
<국내>  
보국훈장천수장 1971.10.01
을지무공훈장 1969.04.26
충무무공훈장 1969.02.05
대통령표창 1967.10.01
무공포상 1965.10.01
국무총리표창 1964.10.01
화랑무공훈장 1952.03.10
화랑무공훈장 1952.02.12
화랑무공훈장 1951.11.05
국방장관표창 1963.10.01
1960.03월과 1963.03  
육군참모총장 표창 2회, 기타 군사령관 군단장표창 등 다수 (1960.03/1963/02)
   
<국 외>  
- 미국 동성훈장  
- 월남정부 최고 민사훈장  
- 월남무공엽성훈장 2회  
   
<일반>  
- 남원 시민의 장 표창(2007.10.25)
- 춘향문화 선향회 공로 대상(2003)
   
   
 
가 족 사 항      
박 인 옥 75세 32.03.20
장남 양 정 환 52세 55.03.26
차남 양 경 옥 50세 57.01.20
삼남 양 경 연 46세 61.06.29
장녀 양 애 리 48세 61.06.29
차녀 양 애 경 43세 64.05.10
친손자 4명 외손자 2명
친손녀 2명 외손녀 2명
       
 
저서 및 역서
1. 저서
새로운 세상을 위하여 (96.2.5)한줄기 출판사
화려한 꾸밈 뒤의 이리를 경계하라 (2000.2.28) 21세기 군사 연구소 (부제 : 6.25 도발자는 누구였는가)
준비 없는 내일은 없다 (2002.7.15)
베트남과 한국군 (채명신장군, 박경석장군, 이선호 박사 등과 공저)
대군 통수에 대한 역사적 고찰
 
2. 옮김
탄넨 베루의 섬멸전 -삼화출판사
전투전사 상.중.하 -삼화출판사
戰利란 이런 것이다 (81.11.30)서림출판사
생활지도의 이론과 실제 -삼화출판사
배반당한 베트남 혁명 (2002.11.10) 알파출판사
군사를 알게되면 세계가 보인다 (2004.2.15) 알파출판사
김정일의 숨겨진 전쟁 (2005.6.20 재판) 알파출판사 (김일성이 죽음과 대량 아사의 수수께끼를 푼다)